이탈리아에 카라바조가 있었다면 벨기에와 남부 네덜란드 플랑드르에는 페레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독무대였습니다.
일개 화가가 아니었던 그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군주를 위해 봉사한 전 유럽의 궁정화가였습니다. 또한 교양 있고, 핸섬한 그는 6개 국어를 능숙히 구사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등 다재 다능한 천재화가로써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루벤스의 등장 배경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1580년대부터 매너리즘에 대한 두 가지 반대 파로서 등장한 '로마 바로크'는 이 전에 감상한 '카라바조의 자연주의 노선'과 '카라치의 고전주의 노선'으로 대표됩니다. 카라바조는 사실적인 인물묘사와 연극적 효과 등을 통해 매너리즘 회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자연주의적' 방식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한 세기 이상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와는 다르게 매너리즘의 인위성을 지양하고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등의 양식을 잘 융합한 카라치는 '고전주의'를 추구했는데요. 루벤스는 이와 같은 초기 바로크 양식의 다양한 요소들을 수용, 결합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냈던 것이죠.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 - Raising of the cross>에서는 북유럽출신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에 힘입은 바를 여실히 느낄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 후의 그의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듯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완벽한 해부학적 묘사는 그가 이탈리아에서 연구했던 이상적인 비례의 고대 조각을 연상시켰으며,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에서 등장하는 건장한 체격 묘사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3차원적으로 잘 짜여진 중앙 패널의 사선적 구성, 카라바조의 흔적이 느껴지는 빛과 그림자의 표현을 볼 수 있고, 예수를 비롯해서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근육남들이기 때문에 그림에서 힘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지금 한쪽에선 줄을 당기고 한쪽에선 십자가를 떠받치고 있는데, 아직 비스듬히 누워있는 상태이기에 화면전체가 사선구도를 이루게 되어 강한 운동감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플랑드르 전통인 세밀한 묘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갑옷이나 나뭇잎, 개의 털등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색채를 풍성하게 사용하면서, 비극적 테마의 어울림은 바로크 양식의 모든 것을 담아낸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북유럽 제단화보다 훨씬 큰 규모를 가지는 이 작품은 로마 바로크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압도적인 효과에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가 그린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 The 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란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당시에는 육감적이고 뚱뚱한 여성의 누드화를 즐겨 그리곤 했는데, 특히나 여성의 살결을 묘사하는데 그를 능가할 자는 없었다고 합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것이 대접받던 당시의 기준으로는 조금 뚱뚱한 몸을 하고 있지만, 그녀들의 모습이 바로 곧 '바로크다.' 라고 말하는 듯 싶은데요. 이 그림의 주제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쌍둥이인 카스토르와 폴릭스가 두 왕녀를 유괴하는 장면인데 폭력적인 주제를 빌려 여성의 관능적인 면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다시 나타난 그 만의 대각선구도는 여성의 벗은 모습을 앞에서나 뒤에서나 밑에서나 구석구석 다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의 수평이나 수직구도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던 것이죠. 이 그림은 루벤스와 얀 빌덴스(Jan Wildens)가 같이 그린 것으로 되어 있는데, 빌덴스는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였으므로 배경부분을 그가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되며, 그의 아틀리에에서 제작된 작품들 중에는 이렇듯 제자들과 협동 제작의 도움으로 화려하고 장대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생애를 읽다 발견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루벤스가 유독 여인들을 살찐 모습으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루벤스가 53살 때 16살의 소녀와 결혼을 하고, 그 어린 아내 헬레네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그 여인도 물론 미인이었지만 살집이 풍부한 편이었고 루벤스 그림의 누드모델로 자주 등장했다고 합니다. 혹자는 "아니, 아내가 화가인 남편을 위해 누드모델이 되어주는 게 뭐 어때서?"라고 쉽게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의 작업 스타일이 본인 혼자서 그리는 게 아니라 수십 명의 문하생들과 함께 하는 거대한 공장 작업실 같은 형태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포즈라는게 얌전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루벤스 그림들을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역동적인, 다이나믹한 동작이 많았는데 뭐 남녀간 유혹하는 장면 이런건 물론이고, 심지어 묶이거나 납치당해 질질 끌려가는 장면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게 큰 지탄없이 문제되지 않았고, 루벤스 사후에도 헬레네는 꽤 높은 신분의 귀족과 재혼하여 풍요롭게 살았다고 하는 모두가 행복한 엔딩이었던 것이죠.
외교관으로도 활약하면서 원만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유럽 각국의 와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는 그 루벤스. 그래서인지 그의 현란한 작품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우러져 생기가 넘쳐납니다. 앞서 만나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카라바조와 대비되는 그의 생애가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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